김 박사 간증 1

저는 이름을 김 영수라고 합니다. 1956년 8월 26일 출생입니다. 제가 어떻게 크리스챤이 되었는가를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1983년 추수감사절날 미국에서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제가 스물 일곱 살 적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MIT의 경제학과의 박사과정에 갓 입학하였을 때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MIT 경제학과는 상당히 명성이 있었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교수님이 수두룩했습니다. MIT 출신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계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로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이론의 실천에도 눈부신 활약을 하여, 각국 정부의 요직과 월스트릿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슨 교수, 솔로우 교수, 모디글리아니 교수, 머톤 교수…등 기라성같은 경제학자들은 아마 일반 사람들의 귀에도 익숙한 이름들이었습니다. 슐츠박사는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내고 계셨고, 몇 년 후에는, 저의 논문지도교수이셨던 휘셔교수는 세계은행의 수석부총재를 지내시게 됩니다. 그런 학교에 입학하게 되어서, 저는 참으로 기뻤고 제 나름의 큰 포부를 품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도 당시에는 포부가 참 컷던 것 같습니다. 뿐아니라, 제 포부를 이루어 나갈 실력과 환경도 제게는 있었다고 당시에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당시 제 나이의 다른 젊은이들과 비교해보면, 저는 가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학력도 학력이지만, 상당한 부동산도 제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또, 돌아가신 선친은 경제기획원장관겸 부총리를 역임하신 분이셔서, 저는 소위 인맥이라는 것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20세때 고등고시를 합격하여 공무원생활을 시작하였고,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내각에 제가 “—아저씨”라고 이름을 부를 수 있을 정도의 장관이 다섯 분이나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아버님의 비서출신들이 모두들 실력이 우수한 분들이셨고, 그분들이 크게 성공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도 경쟁률이 그렇게 심하다는 고등고시를 합격하여, 나름대로는 이미 공무원으로서의 경력을 탄탄하게 쌓아나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제가 한국 정부내에서 공무원으로서 어느 정도 성공할 가능성은 아주 높았다고 봅니다. 사실, 정부와 같은 큰 조직내에서는 출세를 하는 요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스켄달에 휘말리지 않고, 적을 만들지 않고, 큰 실수를 범하지 않고, 또, 너무 튀는 일을 벌리지 않고, 좋은 학위를 가지고 있고, 끈기있게 참으면 대부분 출세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그런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불안해하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일을 하는 것이 제게 맞는 진로인지 아닌 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의 일이 좋아서 공무원이 되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고등고시라는 시험에 합격을 하면 다른 사람이 모두 부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컷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집안에서 여러 분이 원했던 것도 사실이지만…또, 심지어는 내가 출세를 하고 싶어하는가도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품은 포부란 것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라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언가, 제 인생이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이 한 번씩은 느끼는 그런 감정이었겠지요. 하여간, 그런 혼돈과 회의가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저는 출세를 위해서 가지고 있어야될 무기들을 장만하는데 더욱 열중하였습니다. 내가 왜 출세를 해야되는지, 출세를 원하는지 아닌지는 확신이 없으면서, 단지, 출세를 위한 무기를 장만하는데 열중하였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앞으로 남은 인생을 무엇에 열중하면서 살아가야하는지…막연한 불안감이 있으니, 무기장만에 더욱 열중할밖에 없었습니다. 고등고시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고, 인맥이 좋은 것으로도 불안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최고의 학위를 가지고 있어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무언가를 내 손에 넣는데에 막연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그런 심정으로 저는 보스턴에 와서, MIT에서의 학생생활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MIT의 경제학과에 한국인으로서 Y씨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Y씨는 저의 경기고등학교의 1년 선배이시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수재라고 소문이 나신 분이었습니다 유명한 명문가의 자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전에는 그분의 소문만 익히 들었지, 그분과는 별로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에 관해서는, 경기고등학교의 동문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아마, Y씨가 우리 동문들 사이에서는 두뇌가 가장 우수한 동문일 것이다라는 소문과, 예수를 너무 심하게 믿는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소문에 약간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뭐 그렇게 크게 신경이 쓰였던 것은 아닙니다. 도착하여 Y씨를 만나고는 과연 두 소문이 모두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은 정말로 두뇌가 뛰어난 분이셨습니다. 우연히, 그분의 MIT박사과정의 성적표를 볼 기회가 있게 되었는데, 모두 거의 100점 (MIT는 당시, ABC 방식을 쓰지 않고, 100점 90점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겨우 70점을 넘는 정도였구요.) 그런 점수는 MIT에서는 참 발생하기 어려운 점수였습니다. 날고기는 천재들이 와서 울고간다는 MIT에서 거의 모든 과목에서 100점을 받는다는 것은 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분이 머리가 좋은 수재라는 소문은 그렇다치고, 그 분에 관한 다른 소문, 즉, 예수를 심하게 믿는다는 소문도 하나도 틀림이 없는 소문이었습니다. 제 눈치로는 그분은 제가 MIT로 오기 몇 년 전에 예수님을 믿게 된 것 같았는데,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당시에는 그 변화가 뭔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신’, ‘회개’…이런 단어와 개념을 그 때에도 알았더라면, 훨씬 잘 설명할 수가 있었을 터인데, 좌우지간, 제 눈에는 이 Y씨는 예수를 좀 심하게 믿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해도 예수님, 저 이야기를 해도 예수님 이야기만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당시에 예수님 이야기보다는 뭔가 실질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이분에게 듣고 싶었습니다. 집도 구해야하고, 강의준비는 어떻게 해야되나등도 물어보아야하고, 가구는 어디가서 사야 싸게 사고…이런 이야기 말입니다. 좌우지간, 저는 그런 이야기를 이 분에게 여쭈어 보고 싶었는데, 이분은 허구한 날 ‘예수님’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화를 낼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분에게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아야하는데, 그 분에게, ‘거. 예수님 얘기 좀 그만하쇼!’이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자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듣고 있는 수 밖에…거기다가 성의 없이 듣고 있으면 불쾌해 할까봐, ‘그렇군요’, ‘아’, ‘그것 참 좋겠습니다’ 등의 맞장구도 가끔 쳐가면서 말입니다. 심지어는 ‘정말로요?’의 질문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의를 가지고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서 말입니다. 정말로 Y씨는 예수님에 대해서 참 많이 알고 계신 듯 하였습니다. 쉬지 않고 이야기해도 끊임없이 더 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니, 성경은 도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거의 다 외우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집에 가서 보면, 여러 가지 색깔의 색연필로 줄이 쳐저있는 너덜너덜한 성경이 여러 권 있는 걸로 보아서, 정말 성경을 여러 번 읽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런 대화가 좀 지겨웠습니다. 그저 참고 있었던 것이지,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예수님에 관해서 대화하기 시작하고 약 2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두달 동안에 많은 분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몇몇분은 며칠 씩 금식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너무 감사한 분들이지요.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추수감사절이 두 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제 눈에, 보스톤의 교외의 한인교회에서 개최된다는 ‘부흥회’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회의 이름은 이미 잊었습니다만, 부흥강사님의 성함은 ‘데니스 굳델’ 목사님이셨습니다. 이 분은 소위 ‘신유(병고침)의 은사’가 있으시다고 하는 분이었는데, 당시에는 이런 부흥강사가 미국 여기 저기에서 집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전직 해병대원이었다고만 들었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부흥회라고는 생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터였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없이, 그저 한 번 가서 어떤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강하게 끌린다거나, 무슨 특별한 욕구가 일어났다거나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 정도 였습니다. 차라리, 부흥회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부흥회간다고 하면, Y씨 댁에서 맛있는 저녁을 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야말로, 제사보다 제밥에 관심이 있는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좌우지간, 이런 저런, 무슨 큰 이유도 없이, 부흥회를 Y 씨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보스톤 시내에서 차로 약 30-40 분 걸리는 정도의 교외였습니다. 부유한 동네 한 가운데 있는 이쁜 교회 건물에서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부흥회 그 자체는 좀 엉망이었습니다. 부흥강사라는 분도, 말하는 것이 거칠고, 까놓고 이야기해서 무식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전직 해병대로서 월남전에 참전했다고 하는데, 살도 디룩디룩찌고 양복속의 혁대 밖으로 뱃살이 와이셔츠를 뚫고 나와있었습니다. 거기다가, 한국에도 근무한 적이 있었는지, 가끔 같잖은 한국말도 한 두 마디씩 던지는 것이, 꼭 6.25때 미군이 전쟁고아들에게 초콜렛 던저 주듯이 하여서, 참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그렇게 한국말을 한 두마디 던지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오히려 더 불쾌했습니다. ‘식민지교육을 받은 멍청한 사대주의자’들을 모아놓고 살찐 양놈하나가 가지고 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백인들 속여먹기는 어려우니 이제 한인 시장까지 침투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한국의 육교위에서 앵벌이 거지들이 동냥할 적에 쓰는 작은 휴대용가라오케기계를 가지고 와서 구수한 목소리로 노래를 한 자락 걸치고, 설교를 하고, 또 노래를 하여서 흥을 돋구고…제스쳐라고는 엘비스프레스리를 흉내내는 수준의 제스쳐여서, 참 유치하고 천박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동냥을 오래했는지, 목소리는 왜 그렇게 큽니까? 아에, 처음부터 ‘오늘 저녁 하루는 완전히 망쳤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다가 그 목사님이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이건 완전히 ‘공상 소설’의 수준을 넘어서서, ‘새빨간 거짓말’ 가운데서 하도 기가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완전 후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조금 있으니, 헌금까지 걷어가는 것을 보니, ‘사기죄’로써의 범죄구성요건을 완비한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얘기인 즉은,

그 목사님과 친구 한 분이 월남전에 참전했는데, 어느 날, 베트콩에 포위를 당하여, 부대원들이 모두 죽고 목사님과 친구 둘 만 살았는데, 친구는 배에 기관총을 몇 발을 맞았는지, 몸이 아래와 위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 목사님이 기도했더니, 눈 앞에서 몸의 아래와 위가 붙었다… (!!!)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아 남은 친구도 지금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유치한 수법의 2인조 사기단의 잠꼬대이야기였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죽을 뻔하다가 산 친구가 알고보니 엘비스 프레스리였다라고하면 오히려 더 믿어지겠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조소를 감출 수 없었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스트레스를 못이기고 마약을 두 놈이서 나누어 피우다가 좀 과잉으로 피운 모양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약 먹고 경험한 환청 환시를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참,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나도 한국에서는 농담을 상당히 잘하는 편인데, 미국에서는 분발하지 않으면, 농담축에도 끼지 못하겠다는 우려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청중들 곳곳에 사꾸라들을 심어놓았는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할렐루야’를 외치곤 했습니다. 청중은 조종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오히려 더 큰 거짓말이 더 효과있다라는 주장을 했던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도 아마 이런 부흥회에가서 힌트를 얻었던 모양입니다. 단체로 치료를 받아야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런데, 일면 ‘조소’를 퍼부어가면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그리고, ‘전혀’ 그 이야기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 이야기들이 싫지가 않았습니다. 싫지않은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는 그 이야기들이 진짜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들이 모두 진짜이고,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하여간, 목사님이 설교인지, 허풍인지를 모두 마치고, 소위 ‘결신’하겠다는 사람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앞으로 예수 믿을 사람’ 일어나라는 이야기였겠지요. 사실, 저는 누가 왜 일어나야하는지 잘 못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전후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는 바람에 저도 일어섰습니다. 이유도 잘 모르고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일인데, 이 일어선 사람들은 ‘기도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당시에 기도받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군중심리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위에서 끌어 일으켜세우셨는지는 지금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기분에, 무언가 ‘좋은 것’을 나누어 주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고, ‘좋은 것’이라면 일단 받아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밀가루 배급쿠폰같은 것을 나누어주는 것 같다고 생각도 했습니다. 아니면 영화관 할인쿠폰이라도 무언가 나누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무언가,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목사님께 기도해달라고 부탁을 하고들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기적배급쿠폰’을 놓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전부 사기라고 한들, 내게 특히 ‘해’가 될 것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해가 될 것도 없는데, 한 번 일어서 본들 어떠랴 싶었습니다.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목사님이 계속 말하고 있는 예수님이라는 사람은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습니다. 나쁜 사람이면 자기 목숨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뭐, 저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런 말이 무슨 말인지 자신도 모르고 그런 주장을 하던, 그런 사람이 나쁜 사람일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정말로, 그런 이야기가 정말일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증거도 없는데 쉽게 믿는 것도 잘 못이지만, 아닌 증거도 없는데 무조건 아니라고 믿는 것도 잘 못된 것이지요. 하여간, 하나님의 아들이 친척도 아닌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셨다… 거참, 믿어지기는 어렵지만, 사실이라면 굉장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지금 기억에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머리 속에서 잠깐 스쳐간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참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은 믿을 것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잠깐 스쳐간 생각었다라고 기억하는데, 당시 저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회상으로는 제가 그 부흥회 갔다오자 말자 좀 이상해졌다고 합니다. 그 부흥회에서 돌아오자 말자, “예수는 좋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다니. 물론, 거짓말치고는 바보같은 거짓말이지만, 틀림없이 좋은 바보가 한 거짓말이다”라는 말을 제가 계속 여러 번을 반복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전혀 그런 기억이 솔직히 없습니다. 그래서, 제 처도 ‘이 사람에게 뭔가 무슨 일이 있었구나’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하여간, 저는 제 처에게 그 다음 날도 계속되는 부흥회에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저야, 바쁜 대학원생 생활에 그런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들을 두 번 다시 들을 필요는 없었고, 제 처가 가서, ‘기적배급쿠폰’이라도 하나 받아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습니다. 밤새도록, 제 왼쪽 허리의 살 속 깊은 곳이 가려웠습니다. 왼쪽허리라고 하면, 제가 약 7 년 전 그러니까 스무 살 때 운동을 하다 다쳐서 오랫동안 아주 고생을 해오던 허리였습니다. 여차하면, 2주씩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꾸물럭 거리면, 왼쪽 허리 아래 부분의 근육이 야구공처럼 딱딱 해져버립니다. 날씨가 좋은 날도, 왼 쪽 다리는 늘 전기가 오르듯 저렸습니다. 전형적인 좌골신경통이었습니다. 입원도 여러 번 했고, 별별 방법을 다 썼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어느 의자던지, 20 분 정도만 앉게되면, 왼쪽다리전체가 마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도 누워있는 것도 아니고 앉아있는 것도 아닌 묘한 의자를 특수 주문제작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든 사람앞에서도 다리를 꼬으고 앉지 않으면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은 절대 엄금이어서, 2 살난 제 딸 아이를 안아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좌골신경통으로 오래 앓게되면 일반적인 면역기능도 약해지는지, 27살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감기가 걸렸습니다. 감기도 가벼운 감기가 아니라, 고열로 2-3주씩 누워서 잃어나지 못하는 그런 감기였습니다. 항생제도 대량으로 먹게 되었고, 다른 약도 많이 먹게 되었습니다. 감기만 걸렸다하면 이염, 비염, 인후염으로 곧장 합병증이 생겨버렸습니다. 심지어는 감기로 두 달간 고생한 적도 있었습니다. 막힌 코, 가래, 고열…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나날 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흥회에 갔다온 바로 그날 밤, 저를 7 년 동안이나 괴롭히던, 바로 그 왼쪽허리 속 깊은 곳이 말도 못할 정도로 간지럽기 시작했습니다. 피부가 가려웠으면 긁으면 그만인데, 살 속 깊숙히 간지러웠기 때문에, 긁을 수도 없었습니다. 단지, 다리를 들어 올린 다음, 반대방향으로 꺾어서 척추를 돌려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상한 포즈의 요가 동작이라면 상상이 갈 것입니다. 가려움증 때문에 밤새도록 그렇게 이상한 포즈의 요가동작을 하였습니다. 그런 동작을 취할 적마다 척추에서는 ‘우드득’ 소리가 났고, 그런 소리가 날 적마다 조금은 시원해졌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거의 밤새도록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허리를 비틀고, 우르륵 소리를 내고…

그런데, 다음 날, 허리의 아픈 증세가 말끔히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설마 싶어서 조금 있으면 또 아프겠지 싶어서 기다려보았는데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3-4일이 지나자, 마음 속에서 ‘혹시, 그 기적이…설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단 생각이 그곳에 미치고 나니, 내가 무언가 계속해서 연료를 공급하지 않으면, 이 일시적인 기적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확실한(?) 타산에 맞추어 성경을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뭔가 “예수”와 관련이 있는 것을 몸 속에 쑤셔넣어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렇게 증세가 일시적으로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금방 다시 나빠질 것이라고 철저하게 믿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하나님이라는 분은 한 번 주신 것을 그렇게 쉽게 거두어 가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그런 것을 믿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그렇게 쑤셔넣을려고 하였는데 실제로 이해가 되는 구절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한 두어 구절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부지런히 그것을 큰 소리로 읽었습니다. 마치 밧테리를 충전시키는 기분으로 말입니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이 기적은 무언가 주소를 잘못알고 온 기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 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한 것도 아니고, 무슨 착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흥회에 가서 특별히 무슨 깊은 감명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다른 사람에게 갈 기적이 제게 잘 못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기적이 일어 날려면 좀더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데, 눈물이 쏫아졌다거나, 기도를 하는데, 전기충격같은 것이 찌르르하고 온몸을 스쳐 내려간다거나, 뒤로 넘어간다거나 하는 일 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제게는 그런 일이 전혀 발생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이 병만 고쳐주면 선교사가 되겠다던지, 전 재산을 내놓겠다던지 아니면 적어도 반이라도 내놓겠다하는 서약 같은 것도 해야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산 속 같은 곳에 들어가서 물만 먹고 기도를 한다던가, 큰 절을 수 천 번을 한다던가 최소한도의 그 무엇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그런 최소한의 그 무엇이 없었던 나로서는 내게 일어난 것이 무언가 하나님의 행정착오에 해당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잘 못 배달된 돈도 내가 웅켜쥐고 써버리면 즈그들이 어쩔 것인가하는 심정에서, 마치, 제 주인인 것 처럼 행동해버리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잘 못 배달된 기적이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뾰죽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성경을 큰 소리로 읽고있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구절들이 대부분, 무슨 말인지 막연하게나마 이해가 되는 구절이 한 두개…이런 식으로 2주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는 1983년의 추수감사절이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 날, Y씨가 저와 몇 몇 분들을 ‘칠면조 요리’를 해주시겠다면서 초대했습니다. 두말할 것 없이 가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사람보다 일찍 갔습니다. 지금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약속시간보다 늦게 오는 나쁜 버릇이 있지만, 그 때도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약속장소에 30 분정도 늦게 왔지만, 저는 15분이나 일찍 갔습니다. 그래서 Y씨와 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Y씨는 예수님 이야기를 또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듣고만 있는 편이었는데, 그런데, 이 번에는 저도 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2주 전의 경험도 있고, 뜻을 이해하거나 말거나, 적어도 2주 동안 성경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 주전에 부흥회에 갔다와서, 좌골신경통이 없어져 버렸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Y씨가 크게 놀라주기를 기대했습니다만, Y씨는 전혀 놀라는 눈치가 아니고, 오히려 저보다도 더 덤덤해 하였습니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제게 좀 이상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김 영수 씨, 김 영수 씨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세요?”

거 참 어색한 질문이었습니다.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어색한 질문을 저녁 먹으러 온 손님에게 한 주인이 무정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어쨋던, 빨리 대답을 하고 치워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길게 해봐야 유쾌하게 결말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까딱 잘 못하다가는 시비거리만 되게 되어있습니다.

“당연하죠”

그랬더니, 그 정도에서 화제를 딴데로 돌리기는커녕, Y씨는 계속해서 더 어색한 질문을 제게 했습니다.

“김 영수씨는 하나님과 친구가 하고 싶으세요?”

참, 답답하고 어색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가 청와대에 근무해보아서 잘 압니다. 조그만 나라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친구의 사돈의 팔촌도 어깨에 힘을 주고 세도를 피우는데, 세상에 하나님의 친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종로에 길을 막고, ‘당신은 영국 여왕의 친구가 되고 싶으십니까?’라고 물어보면 아마 거의 다 그렇다라고 대답을 하겠지요. 하물며,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야!!! 대통령보다도 무한하게 더 권세가 강하시고 크신 분이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친구가 되는 것이 싫다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될 수만 있다면이야”

라고 선뜻 대답했습니다. 물론, 못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지만, 제가 되고 못되는 것하고, 되면 좋은가 좋지 않은가의 문제하고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단박,

“김 영수씨, 지금 저와 기도해 보시겠어요?, 제가 뭐라고 하면 따라서 해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즉각 동의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른 손님이 오시기 전에 이 어색한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던 생각도 솔직히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 한 구석에는 ‘혹시’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뭐, 특별히 해되는 것은 아니니까…그랬더니, Y씨는 저를 조그만 방으로 다리고 가더니 간단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그 기도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맞아들이는’ 기도였습니다. 뭐, 별로, 의미가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무슨 주문이려니 정도로 생각을 했습니다. “열려라 참깨!”같은 주문말입니다. 그 기도의 깊은 의미같은 것은 사실 별로 신경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왕 주문을 외우려면 정성껏 외어야된다는 생각을 하고, 정성껏 열심히 주문을 외우듯이 정성껏 Y씨가 한 기도를 따라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무엇인가 조금더 가치있는 ‘기적배급쿠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같이하던 기도가 마쳤는데도, Y씨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계속 무엇인가 기도를 했습니다. 저도 머리를 푹 숙이고, 그 분의 기도가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황당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당황해본 적도 없고, 이렇게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그렇게 당황한 적은 없습니다. 지금도 그 얘기만 하게 되면, 저는 감정을 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눈물이 절로 나오고, 목소리가 울먹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그래서 이렇게 글로 써놓을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Y 씨가 2-3분간 기도를 하는 도중, 갑자기, 저는 제 눈 앞에 환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슬라이드 화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 뇌가 저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속에는 ‘혹시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시면, 아마, 내 뇌를 사용하셔서 이미지 같은 것을 만드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지는 환상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을 하고 계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뇌에 큰 손상이 가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환상을 보는 것 자체는 당황할 것도 황당해 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단지, 그 환상의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내가 평생 처음 본 환상이라는 것이, 다름 아닌, 내가 과거에 지은 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속에서 아주 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주 악한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제게 그런 악한 얼굴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착한 사람을 나쁜 꾀로 해치는 행위였습니다. 얼마나 흉하고 얼마나 역겹고 얼마나 더러운 장면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내가 그 사람이라면 저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이 진정으로 계시다면, 바로 그 문제를 제일 처음 짚고 넘어가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호흡마저 곤란해졌습니다. 저는 억지로, “이것은 단지 상상일 뿐이야. 단지 상상일 뿐이야”라고 생각할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 본 환상 위에 이 번에는 다른 환상이 겹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환상은 제가 저지른 다른 죄에 관한 환상이었습니다. 처음 것보다 더 흉하고 더 더럽고 더 악한 죄였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해치는 죄였습니다. 그 위에 또 다른 환상, 그 위에 또 다른 환상 이렇게 저의 죄의 행진은 계속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가지 않아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큰 손으로 제 목을 누르고 계시다고 느꼈습니다. 정말로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엄청난 죄책감과 회한이 정말로 해일처럼 몰아닥쳤습니다. 저는 정말로 흉한 정말로 악한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보기만 보아도 토할 것같은 그런 잔꾀들… 도저히 변명할 건덕지가 없는 죄인, 처형날만을 기다리는 사형수, 사형대 앞에서도 무언가 트릭을 써서 빠져나올려고 하는 그런 인간, 정말, 그런 더럽고 치사한 인간…그런 인간을 보았습니다. “괜히 기도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고 뭐고, 너무 가까이 하면 위험한데, 괜히 기도한답시고 까불다가 이미 지나간 일들이 다시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고 후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죄를 지었다면, 하나님에게서 안전거리를 유지하여야 할 터인데,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알아보지도 않고, 기도같은 것을 장난처럼하다가 직방으로 잡혀서 오늘은 처형을 당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인제는 단두대에서 시퍼런 칼날이 슁하고 떨어지는 것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다 틀렸다 너무 늦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환상들이 모두 제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 눈앞에서 겹쳐서 보이던 그 모든 환상들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마, 제 뇌가 용량이 초과되게 사용이 되어서 뇌가 환상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중단한 모양입니다. 제 앞에는 화면이 텅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혹시 하나님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과거의 이 일들은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자’라는 시그날일지도 모르겠다고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사면, 빚의 탕감, 용서, 새로운 출발…그런 단어들이 생각났고,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이 그곳에 미치자, 제 가슴 속에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토할 것 같은 기운으로 가득 차있던 제 가슴이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이유도 없이 저는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또 너무 기뻐서 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저 눈물이 나왔습니다. 성인 남자가 다른 사람 앞에서 흐느끼고 울게 되는 것은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인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저는 간증을 하다가도 꼭 이 대목만 나오면 울게 됩니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이야기의 이대목만 나오면 눈물이 터져나와서 제 처는 제가 다른 사람 앞에서 간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매번 우는가라면서 주책스럽다고 합니다. 하여간, 저는 그 때 이유도 모르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슬프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왠지 나는 무지하게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정말 무지하게 행복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보통 사람들이 ‘방언’을 한다고 하는 그런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경험을 약 5-10 분 동안 하였다고 기억합니다. 반은 울고, 반은 방언을 하고 그러면서 5-10 분 간을 계속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당시에 알지 못했습니다.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고, 눈은 빨개졌고, 얼굴은 아주 많이 부었습니다. 흐느끼기와 방언을 중지를 하였는데도 계속 딸꾹질이 나왔습니다.

제가 그 작은 방에서 나왔을 적에는 벌써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도착하였습니다. 15 명 정도 되는 분들이 영문을 모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고, 저는 혼자서 방에서 큰 소리로 흐느끼면서 입으로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모두들 의아해 하면서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저는 눈물과 웃음이 범벅진 얼굴을 하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계속 나오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저녁을 먹는 내내, 저는 무슨 말을 제가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말을 하려 하면 발음이 뒤 틀어져 버렸습니다. 발음도 발음이려니와 내용도 엉망진창으로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계속 해서 딸꾹질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는 제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무지하게 행복했었으니까요.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바깥에서 기다리는 분들을 가끔 만납니다. 그분들은 제가 그 때 약간 맛이 간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적에 저는 그렇게 싫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실 그날 약간 맛이 간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 날 이후, 저는 약간 맛이 가게 예수님을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일어나기가 싫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의 그 일이 꿈이었고, 이 세상이 어제 저녁의 전과 마찬가지로 돌아가버려있으면 어쩔까 싶었습니다. 어제 밤의 일은 단순한 사고였고, 하나님이 오늘 부터는 상황을 정상으로 돌려놓으셨으면 어떻게하나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일은 공부를 너무 과중하게 한 나머지 제가 좀 정신이 약해져서 일어난 단순한 헤프닝이었으면 어쩔까 싶었습니다. 어제 있었던 그 행복한 기분이 그저 어제 잠깐 있었던 일로 그치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필요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첫째로 세상이 냄새가 달랐습니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전혀 다르게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제 속에 들어와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주 조용한 성격의 아주 좋은 분이 들어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어젯밤의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그 분에게 말을 거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제 스스로 놀랐습니다. 미국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인지, 제가 처음 그분에게 건넨 말은 영어였습니다.

“Who are you that make me feel this nice?(당신은 누구 시길래 제가 이렇게 행복합니까?)”

그렇게 제가 말을 건네자, 상대는

“I love you, Youngsoo”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둘이서 보스턴의 아름다운 찰스 강변에 오랫동안 앉아있기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저는 그럴 적마나 아주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녹색 짧은 바지를 입은 귀여운 남자아이로 변한 제 모습을 환상으로 보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빨갛고 어여쁜 사과를 꼭 하나 씩 받는 그런 착각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이야기가 제가 크리스챤이 된 과정을 대강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뒤로는 저는 성경을 열심히 읽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성경공부는 서너개씩 참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저도 언제나 예수님 이야기만을 하였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예수님 이야기만 했습니다. 한국에 계신 저희 가족들은 걱정을 아주 많이 했습니다. 제가 MIT가서 예수에 미쳐서 공부는 하지 않고 예수님 이야기만 하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한국에까지 퍼졌다고 합니다. Y 씨는 공부 잘 하고 예수 심하게 믿는다는 두 가지 소문이 났지만, 저도 그 둘 중에 한 가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MIT 경제학과는 공부가 힘들어서 한국 사람이 가기만 가면 머리가 돈다는 소문이 나기도 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매일 매일 많은 기적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기적과 큰 기적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읽었는데, 바로 그 일이 조금 있다가 실제로 일어나는 그런 작은 (?)기적들은 매일 일어났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물질적인 축복의 기적도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 눈에야 작은 기적과 큰 기적의 구별이 있을 리가 없지만, 하여간, 제가 임의로 작은 기적과 큰 기적으로 구별을 합니다. 하여간, 언제고 기회가 있으면 제가 경험한 큰 기적들에 대해서도 간증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처의 말로는 큰 기적들 중에 제일 큰 기적은 다름이 아니라, 제가 사람이 바뀐 것이라고 합니다. 전에 비해서 걱정이 없어지고, 신경질을 덜 내고, 참을성도 좀 많아졌다고 합니다. (사실은 그래도 걱정도 많이 하고 화도 요새도 많이 내는 편입니다) 제가 그 때 Y씨와 기도를 하기로 한 것은 참 잘한 결정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 뒤로는 저는 허리가 완전히 나았습니다.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6개월이 되자 너무도 아름다운 봄이 되었습니다. 저는 저의 딸을 다리고, 위에서 말한 챨스 강변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제 딸을 안아 올렸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저의 딸을 제 가슴까지 안아 올렸습니다. 뒤의 배경에는 벛 꽃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저와 제 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사진은 저의 가족사진들 중에서 가장 소중한 사진이 되었습니다. 제 딸은 올해 보스턴에 있는 Tufts라는 대학을 가게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도 보스턴에 딸을 만나러 다녀오려 합니다. 제가 이번에 보스턴에 가면 저는 그 딸아이를 15년 전의 그 장소로 다리고 갈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안아서 가슴까지 들어올리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15 년 전에 저의 허리를 고쳐주셔서 딸아이를 들어올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과 그 동안에도 평안하도록 가까이서 지켜주시고 늘 축복하여 주신 하나님을 큰 소리로 불러보려고 합니다. 저는 아마 너무 너무 행복해 할 것 같습니다. 그 때가 되면 저는 하나님께 더 이상은 머리가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떼를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후기: 저의 딸아이도 보스턴에 가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스턴의 교외에 있는 어느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합니다. 저는 그 교회가 무슨 교회였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알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이 세상을 통과하게 하실 적에, 사람에 따라 정말 각기 다른 조건 속에서 다른 형태로 다른 루트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은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인생을 심각하게 생각하시면서 이 인생이라는 여행을 성숙하게 통과하시고, 또, 다른 분들은, 많은 고난을 겪으시면서, 그럼에도 하나님께 감사하시면서 이 인생이라는 여정(旅程)을 치열하게 통과하십니다.

어느 분은 이 인생을 예리한 관찰력을 가지고 통과하시면서, 다른 사람이 아직 보지 못한 그것들을 그분은 보시고 다른 사람에게 ‘아하 세상에는 그런 것도 있구나’ 하는 깨우침을 주면서 통과하십니다.
물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걱정만 하면서 통과하시는 분들도 많구요…
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그 여정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의 경우는 모든 것을 쉽게 그리고 풍족하게 해주셔서, ‘너는 정말 세상적으로 모든 것을 최고로 풍족하게 해줄 터이니 그걸 모두 가지고 이 세상을 한 번 만족해 하면서 즐거워 하면서 네 맘대로 맘껏 한 번 자유롭게 통과해 보거라’…이런 것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이 많답니다. 재산, 학력, 사업, 가족, 건강, 친구들…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팔자로만 본다면야, 제 팔자가 아마 상(上)의 상의 상팔자일겁니다. 그리고, 마음껏 자유롭게 즐기면서 사는 편입니다. 누구 눈치를 보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별로 크게 나쁜 버릇이 있어서 방탕한 것도 아닌 편입니다. 술도 마음껏 마셨다가 끊었다가 마셨다가 하지만, 끊을 적에 별로 괴롭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저의 이런 세상적인 축복 때문에 난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년 전에 중국에서 비밀교회에서 목사님들 앞에서 뭔가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강의 시작 전에 제 간증을 간단하게 하게 되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제 간증이란 것이 수준이 별로 좀 그렇습니다. 뭐, 이렇게 축복받았다, 저렇게 축복받았다. 거기다가 이런 기적 저런 기적도 여러 번 경험했다…이런 좀 유치한 수준의 간증입니다. 깊은 영적인 진실, 삶에 대한 재조명…뭐, 이런 깊은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유치한 놈은 유치한 간증이 어울리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제게 딱 어울리는 간증이지요.

제가 경험한 ‘상당히 유치한’ 기적 중 에는

심지어, 83년에 하나님 처음 믿기 시작했을 적에, 보스턴의 시내 한가운데있는 MIT 대학 고층 빌딩 기숙사 23 에서 밤중에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하나님 정말로 정말로 전지 전능하시면 지금 창밖에 코끼리를 한 번 놓아봐 주셔요’라고 했더니, ‘아이구 우리 영수가 말씀하시는데, 누구 말씀이시라구…’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밖을 내다 보았더니, 정말로 한 밤중에 코끼리가 한 스무 마리가 앞의 코끼리의 꼬리를 뒤 코끼리가 코로 물고 행진을 하고 있었답니다. 소리도 나지 않게 움직이고 있더군요. 분위기가 정말로 괴기스러웠어요…다음날 신문에 보니까 시내에서 하던 서커스가 옆의 도시로 옮겨갔답니다. 무지하게 놀랐지요…기도할 적에 장난치는 걸 될 수 있으면 안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를 비교적 쉽게 쉽게 잘 들어 주시는 편이랍니다. 하여간 이 인생을 저는 쉽게 쉽게 살게 하시기로 하나님께서 결정을 하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믿음이 약해서 그럴 겁니다.

이야기기 옆으로 샜군요. 제가 목사님들 모셔놓고 간증을 하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시다.

근데, 여기에서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그날 제 간증을 들으시는 목사님들은 모두 너무도 가난한 목사님들이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만성 영양실조로 시력들도 약해져 있으시고, 정말 수 백 불만 쥐어드리면 그 중국 산골 산골에 교회를 여러 개 만드실 그런 분들이십니다. 너무도 가난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시는 진짜 귀한 일꾼들이십니다. 저 같은 엉터리 크리스챤들과는 질적으로 차원적으로 다른 분들이시지요…

그런데, 그런 분들 앞에서 그 다음 날이면 제가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이 안 왔습니다.

“하나님…제가 세상의 이 복 저 복 받은 간증을 하면, 저 분들이 속 상하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병도 났다, 나는 돈도 생겼다, 출세도 했다. 이렇게 좋은데 산다. 나는 이렇게 기적도 경험 했다. 저런 기적도 경험했다. 이런 간증이 얼마나 유치한 제 자랑입니까? 저렇게 가난한 분들에게 제가 돈 자랑 사업 자랑 학력 자랑을 하는 것이 무슨 덕이 되겠습니까? 저렇게 아직도 많이 아프신 목사님들 앞에서 제가 기도 받고 몸이 기적적으로 나았다는 간증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나는 학교도 초일류 학교에 정치적인 커낵션도 있고 기적도 늘 경험하고 돈도 있고 그리고 성경도 잘 알아서 이렇게 강의도 하고…저 분들이 얼마나 부럽겠습니까? 이게 간증이 아니라 누구 약 올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밤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무정하게 시간은 째깍 째깍 흘러갔습니다. 아침이 되고 3시간 뒤면 간증을 해야 됩니다.

No matter how hard I prayed, the time went on mechanically. Morning came and my testimony will happen in three hours.

간증할 시간은 다가오고, 간증을 하면, 저 분들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억지 앙탈을 부렸습니다.

“하나님, 83년에 제가 하나님 처음 믿을 적에 코끼리를 보여달라고 하셨을 적에 정말 신기하게도 보여주신 적이 있으시죠? 저, 오늘 아침에도 코끼리를 보여주시면, 간증하고, 아니면, 안 합니다…”

영하 40도 엄동 설한 만주 벌판 한가운데, 아침시간에 무슨 코끼리가 있겠어요? 우히히히
간증 안 할 핑계를 찾은 것이지요.

그런데, 아침을 먹는데, 제 간증 시간이 2시간 연기되었다고 하면서, 춥지만, 선교사님께서 산보나 가자고 하더군요. 옳다꾸나 취소 되었나 보다 할렐루야… 그래서 따라 나섰지요.

비밀 선교 센터 뒷 쪽의 야산으로 올라갔는데,

거기에 글쎄…

높이 2m정도의 돌로 된 코끼리가 20마리가 줄로 얼어있는 채로 쭉 서 있었습니다. 황제 부인의 능이 있는 자리라나요?

제가 그 얼어있는 돌 코끼리 행렬을 보자마자, 하늘을 보고 막 웃고, 동시에 땅에 주저 앉아서 혼자서 땅을 치면서 막 눈물을 쏟아 내고 웃다가 또 울고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시던 선교사님께서 ‘김 박사가 코끼리를 그렇게 좋아하느니 몰랐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럼요…코끼리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라고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서 답했습니다.
그리곤,
비밀 선교 센터로 돌아와서, 아무 거리낌 없이, 제가 받은 여러 세상적 물질적 축복들에 관해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가난한 목사님들이 ‘아! 하나님께서는 저렇게 실제로 축복을 주시는 구나. 우리가 말로만 듣던 축복을 실제로 저렇게 받는 사람이 우리 눈 앞에 있구나. 우리도 하나님 보시기에 필요만 하시면, 언제고 저렇게 축복을 많이 받는구나…지금은 좀 고생되지만, 우리는 그저 아무 걱정 말고 하나님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되겠구나…’라고 하면서 모두들 격려를 크게 받으시면서 모두들 아주 좋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뒤로 요사이도 코끼리만 보면 괜히 눈물이 자주 난 답니다…

P.S. 바로, 이 코끼리 간증을 중국 북경의 어느 식당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막 웃었습니다. 저는 제 간증이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웃는 줄 알았는데, 바로 제 앞에 있는 요리가 정말로 코끼리 코 요리였답니다. 거의 토할 뻔 했답니다.

P. P.S. 제 경기고등학교 동기인 71회 신우회 천배회장에게 바로 이 이야기를 서울의 여의도 63빌딩에서 하고 나오는데, 그 빌딩 1층에 실물 크기의 코끼리를 20마리 정도 IMAX 간판에 그러 놓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또 징징 흑흑 울음이 나왔습니다…하나님 저 잘 살께요.

하나님 걱정 안 하시게 절 잘 살께요…라는 말이 나오면서 한 참 울었습니다.
PPPS.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중국에서 간증한 날 밤 한밤 중에 중국 공안이 그 선교 센터를 포위해서 전부 체포되게 되었었답니다. 그래서, 체포되게 된 이 가난한 목사님들이 쫙 모여서 손을 잡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들이 기도하고 나시더니, “오늘은 순교하는 날이 아니니 안심하고 자자” 고 하더랍니다. 그러고 나니, 공안이 이상하게 포위망을 풀고 돌아갔답니다. 저는 그 것도 모르고, 음냐 음냐 잘(?) 자고 있었나 봅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일하고 고생하고 기도하고 수고하는 사람 따로 있고, 저처럼,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같은 유치한 간증이나 하고 다니다가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도 못하고 음냐 음냐 자는 편하기만 한 놈이 따로 있나 봅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저는 좀 편하게 살리시기로 결정하셨나 봅니다…

PPPPS: 2010 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 상당히 많은 재산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재산을 인수하는 날, 어머니 장롱에서 코끼리 장식품이 많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수야. 이 많은 재산 내가 주는 건지 알지?” 하시는 것 같아서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서글퍼서 울고, 하나님이 감사해서 울고. 하여간, 그 코끼리들을 보면서 아주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PPPPPS: 2011 년 티벳 여행 중에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는 내가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걸 드려야 하는데 그게 뭘까…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 “영수야 내가 보기에는 네가 코끼리 간증을 할 적에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 같더라”하는 하나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 맞아 맞아 내가 하는 일 중에서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그 것, 사람들에게 제일 도움이 되는 바로 그 일을 하는 것이 바로 바로 내가 가진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바로 그 순간, 제 눈 앞에 있는 티벳의 길거리의 상점의 쇼우 윈도우에 코끼리 장식물을 팔고 있는 겁니다. 들어가서 두 개나 샀습니다. 어떻게 팠는지, 코끼리 속에 또 코끼리가 있는 아주 신기한 장식품이었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 상점 주인이 그 코끼리가 재운을 가져다 준다고 그랬습니다. 압니다 알아요…그러면서 상점을 빨리 뛰쳐 나왔습니다. 눈물이 마구 나오는 것을 상점 주인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PPPPPPS: 2013 년 제 회사중 하나가 상장을 하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케냐에서 저희 제품에 중요한 허가가 났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사실, 바로 그 즈음에 아래의 사진을 보고 내년에는 케냐의 킬리만자로에 한 번 가볼려고 하던 즈음이었습니다.